익산 미륵사지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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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의 목적지는 논산이었다. 서원이 워낙 많은 곳이라 쉬엄쉬엄 걸으며 자꾸 산으로 가는 내 마음을 진정시켜보고 싶었고, 탑정호에 가서 일몰을 담아보고 싶었다. 익산을 거쳐 논산으로 가는 도로 위, 왕궁리 유적지 오층 석탑 위로 벚꽃이 흩날리는 풍경에 사로잡혀 나는 익산에서 멈추었고, 그렇게 익산 여행이 시작되었다.





익산 미륵사지 입장 안내

주차료 관람료 : 무료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 1일

관람시간 : 오전 9시 ~ 오후 6시



문화유적지가 많지도 하고 고요한 느낌이 좋아 자주 오는 익산이지만 날씨가 좋아 기분이 더 들뜬다. 이놈의 코로나 19만 아니었다면 친구들과 함께 갔을테지만. 4월 이제 진짜 봄이지. 꽃샘추위도 없겠지. 더욱 싱그러워진 초록의 만남. 깨끗하고 넓은 잔디광장이 이내 감탄사를 불러낸다.



백제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사용되던 것으로 발굴 조사에서 나온 것을 정리해 놓았다.


백제문화 단지이지만 공원 조성이 잘 되어 있어서 데이트 코스나 가벼운 가족 나들이 장소로도 눈여겨볼만하다. 굳이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방문해보면 좋은 곳이다.



복원되어 개방된 익산 미륵사지 석탑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절터로 알려진 이곳은 40m의 목탑을 중심으로 양쪽에 석탑 2개가 있었고, 그를 동(東) 탑과 서(西) 탑이라 불렀다. 목탑과 동탑은 어떻게 사라져버렸는지도 모르지만 서탑과 당간지주만이 1300년,  위태로웠던 시간을 버티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륵사지 석탑은 9층으로 추정되지만 6층까지 남아있는 서탑을 말하는 것이고, 하얀색으로 복원된 것은 서탑과 마주 보고 있었던 동탑이다. 동탑이 복원되었을 당시, 시체보다 더 창백한 저 뽀얀 돌빛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고도 한다.



마동은 신라 선화공주와 혼인하고 무왕이 되었다. '서동요'의 주인공들이다. 마한의 중심지였던 이곳에 그들의 신앙을 담아 절을 세우며 정치적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미륵사는 창건되었다. 2001년 10월부터 해체·보수 작업을 시작하여 복원을 완료한 익산 미륵사지 석탑.



9층으로 추정되지만 그렇게 복원하지 않고 6층까지만 보수를 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만큼 원래의 모습으로 보수를 하는 것이 맞는 일이라고 한다. 보수를 하는데 17년이나 걸린다며, 횡령이나 비리가 있는 것은 아닌지 그들은 손가락질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나는 뚜렷하게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 때 이곳으로 소풍을 왔을 때, 일제가 붕괴된 서탑에 콘크리트를 흉물스럽게 덮어놓은 모습을. 185톤의 콘크리트를 깨는 작업부터 석재 하나하나를 들어 올리는 일까지 그들의 수고가 보이지 않았던 걸까.



보수 작업을 시작할 때는 해외 기술을 배워왔지만 이제는 여러 나라에서 문화재 보수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이곳으로 찾아온다.  17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르면서 국내 문화재 보수 기술이 향상되었다고 한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복원 관계자들도 현장을 찾아왔었다.



보수 현장 뒤편으로는 미륵사지의 넓은 절터가 펼쳐진다. 그리고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보수 과정을 전시해놓은 것도 둘러본다.



미륵사지 당간 지주는 절에서 의식이나 행사가 있을 때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의 역할을 했다.



미륵사지 석탑은 국보 11호로 높이 14.24m이다. 이는 우리나라 최대의 석탑이라고 한다. 전면이 붕괴되었던 것을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콘크리트로 덮어버렸고 보수 사업은 그 콘크리트를 깨내고 6층까지 남아있는 모습을 살려내는 작업이다. 


추정되는 9층까지 높이로의 복원이 아니라 6층까지의 보수작업이기 때문에 완성되어도 '아름답다'라는 말은 들을 수 없었고 너무 깨끗한 새돌처럼 보여서 세월을 느껴보기는 힘들게 됐다.




2009년 해체·조사 과정에서 사리봉안 기록판과 유물이 발견되면서 미륵사지가 창건된 해가 서기 639년이라는 것이 확실해졌다고 한다. 봉안기록판에 무왕의 왕후가 백제 최고 관직자의 딸이라는 사실이 새겨져 있어 무왕과 선화공주의 '서동요'는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역사 다큐멘터리에서도 잘못된 역사는 바로잡아야 한다며 말들이 많았던 그 해였는데, 연구가 더 필요한 부분이라는 말로 끝이 났던 것 같다. 워낙 인기 많았던 설화라서 그런가, 아무튼 지금까지는 어떤 확답도 없는듯하다.



서연못에서 바라보는 미륵사지




20년 보수를 끝내고 작년 봄에 장엄한 모습을 드러낸 익산 미륵사지 석탑. 국보 11호의 모습이다. 


현존하는 국내 최고, 최대 석탑인 미륵사지 석탑은 부재 1천627개를 짜 맞춰 새롭게 완성되었다. 높이는 14.5m, 폭은 12.5m, 무게는 약 1천830t이다. 일제는 1915년 석재들이 일부 무너져 내린 미륵사지 석탑을 콘크리트로 긴급 수리했고 이후 석탑은 약 80년을 콘크리트에 엉겨 붙은 채 버텼다. 그 시간을 버텨내느라 수고했고 또 20년 동안의 보수 작업을 버텨내느라 고생한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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